60page


60page

옥천리 자택에서 태극기를 많이 만들고 동일 안동교회의 종을 울려 그것을 신호로 일제히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여 군중이 합세키로 은밀히 모의 진행중 안동경찰서에 3월 12일 구속되었다. 지사는 유치장 안에서 교인들에게 안동 각면 순회와 책임자를 결정토록 지시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일관아를 습격하도록 선동하다 특히 임하면은 처가곳이라 독려한 힘이 많아 거사가 크고 희생자도 많았다. 3월 18일과 3월 23일에는 안동읍내 각처에서 4~5천의 군중들의 독립만세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우렁참으로 김원진과 같이 죄수들을 일깨워 대한독립만세를 유치장이 떠나갈 정도로 고창하다 지사는 옥중의 고문으로 오른쪽 귀가 찢어지고 고막이 파열되다. 보안법 위반 소요죄 치안방해 등 여러 죄명으로 징역 3년에 처하였다가 다시 복심법원에 공소하여 3년 집행유예 선고 받았다. 광복 전까지 일경 고등계 형사들의 요시찰인으로 처절한 고초를 겪다가 광복을 맞아 안동군수 추천으로 북후면장에 임용되다. 1950년 군내유지들과 혈족들의 권유로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하다 이후 여생을 국가번영에 헌신하다가 1958년 무술 10월 8일 향년 83으로 조국통일을 기원하며 별세하다. 녹전면 사천리 앞산에 모셨다가 다시 배위 임씨와 합장을 하다. 배 예천임씨 경연여사는 병석의 따님으로 1893년 계사 정월 5일생이며 1947년 정해 2월 6일에 졸하자 사천동산 임좌에 모시다 배 밀양박 구한여사는 봉학의 따님으로 1920년 경신생이며 1969년 3월 11일에 졸하자 칠곡교회 묘지에 모시다 장자 신국 학사의처는 흥해 배춘화이고 차자 신득의 처는 인동 장례분이며 삼자 신숙의 처 선녕 남은숙이다. 장녀 난향의 부는 예천 임덕수이고 차녀 신화 전도사의 부는 안동 김유동이다. 신국의 자 석행 석사의 처는 평창 이현숙이고 석주 학사의 처는 경주 김경숙이며 여 병인의 부는 해주 오효일석사이고 성인학사의 부는 은율 송점철 학사이며 혜인 석사의 부는 김해 김덕재 학사이다. 신득의 여는 혜원 혜진이요 신숙의 자는 길산이요 여는 혜주이. 임덕수의 자 주환의 처는 전주 이순분이요 김유동의 여 청자의 부는 수원 백병귀 박사이다. 석재의 자는 성구요 여는 예지요 석주의 자는 민구며 오효일의 여는 한선 영지요 송점철의 여는 사혜 지혜요 김덕재의 자는 청원이다. 지사 사후에 유지를 받들어 뜻있는 인사들이 3.1장학회를 설립하여 지사를 추모하고 후진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