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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 휘 성하이며 모친은 한양조씨 휘 언호의 따님이다. 또한 충효쌍전의 벽산 선생이 공의 백형이시니 가히 그 형에 그 아우라 할만하다. 공은 임술년에 태어나 청명하고 담대한 자질로 종조부 화엄공과 계부 면산공에게서 경전을 익히며 유자로서의 소양을 길렀다. 병신년 백형께서 청향산에서 창의하자 공은 좌포장으로 임명되었다. 태봉전투에서 왜적 5명을 포살하였고 삼척에서는 민용호 대장과 연합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영양진마골에서는 왜적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백형을 구출하였다. 을사늑약 후 백형 복심을 담은 밀명을 직접 전하며 각 의진과의 협상에 수천리 발보도 마다하지 않았다. 백형께서 다시 의진투쟁을 시작하자 공께서도 그 의진에 투신하였다가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였다. 손톱 밑을 바늘로 찔러 종신토록 손가락을 펴지 못하였고 늑골이 부러지는 악형을 당해 평생 운신조차 부자유하였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절개를 끝까지 고수하다 광복도 보지 못한 채 기묘년에 한많은 일생을 마쳤다. 묘소는 황새두들 손좌에서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으로 이장하였으며 배위는 전주유씨 휘 비현의 따님으로 묘소는 합봉이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으니 장남은 영걸 차남은 영훈이다. 장녀는 심경택 차녀는 유교연에게 출가하였다. 영걸의 아들은 용래이고 딸은 우용하 권영대 김헌욱 황갑삼에게 출가하였다. 영훈의 아들은 순래 태래이고 딸은 유삼식 임성렬 배국환 이민호에게 출가하였다. 심경택의 아들은 상동 상환이고 유교연의 아들은 동전 동목 동훈 동승이다. 용래의 아들은 기욱 찬섭이고 순래의 아들은 기항 기도 기범이며 태래의 아들은 기현 기혁 기민이다. 이하는 여기에 모두 기록하지 못한다. 공께서 서세하신지 67년만인 병술년(2006) 광복절에 국가에서 건국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