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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도 아들 석과 교인 전성재 최병현등에게 명하여 재판소및 관공서 게시판에 선언문을 붙이도록 하고 동지들을 규합하다가 부자 함께 체포구금되어 1년간의 옥고끝에 석방도시었다. 기후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밀송하고 1929년에는 신간회 본군지회장에 추대되어 농촌계몽과 문맹퇴치 운동을 벌려 민족의식을 고취허눈 향토의 등불이 되시었다. 1945년 조국광복을 맞아 군민들은 의사를 건국준비위원회 본군 위원장으로 받드니 이를 쾌히 승락하시었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리요 정계는 좌우익으로 갈리어 민심이 날로 혼란하니 이것은 선생이 평생을 두고 염원하던 진정한 통일조국의 참모습은 아니었다. 환명을 느끼신 노의사는 3개월만에 위원장직을 용퇴하시고 재야에 묻혀 오로지 겨레의 대동단결만을 위해 후진들을 선도하는 것으로 자위하시었다. 1950년 10월16일 향년 84세로 서거하시니 정부에서는 선생의 충절을 높이 찬양하여 1983년 8월31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시고 추모비를 세우게되어 이글을 새기노리 의사의 높으신 얼은 월과 함께 길이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