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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학교가 배출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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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리석_1881~1945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파수꾼' 평남 영원 출생, 숭실학교 1회 졸업 20세에 숭실학당의 첫 입학생으로 들어간 자리석은 세계지리 에 관심이 높아 사민필시(士民必知)」(헐버트가 지은 세계 지리서)를 늘 품에 안고 살았다고 한다. 차리석은 안상호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민족 교육운동에 힘썼다. 1919년 평양에서 3.1운동에 참가한 후 '반드시 조국 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에서 '필성(必成)'으로 개명하고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방 선전부 이사. 1930년 임시 의정원의 부의장 등을 역임하면서 김구 선생의 신임을 받았고 임시정부 수립부터 해방까지 임시정부의 살림을 도맡아 하며 임시정부의 '파수꾼 역할을 하였다. 차리석 선생은 1945년 조국의 해방 소식을 듣고 임시정부 한국을 준비하다 9월 9일 과로로 쓰러져 조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서거하였다. 1948년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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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_1882-1931 / 독립운동에 헌신한 실천적 신앙인 평남 강서 출생, 숭실학교 5회 졸업 유교 집안에서 성장한 손정도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중 우연히 하룻밤 묵은 목사 집에서 기독교 교리를 접한 후 상투 자르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1911년 목사 안수를 받고 베이징. 하얼빈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손정도 목사는 1915년부터 정동교회에서 시무하며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그가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시절 이화학당 재학 중이었던 유관순은 정동교회에 다니며 그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손정도 복사는 1918년 평양으로 이주하여 신한청년당 에 가입하였고, 1919년 3·1 운동을 계획하던 중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조직에 착수하고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 부의장, 2내 의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중국 동북지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동포들의 삶의 터전이 될 '이상촌'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