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page


39page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1919년 3월 27일 파리장서를 소지하고 상하이에 도착한 김창숙은 파리로 가는 대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김창숙은 임시의정원 의원에 피선되어 임시정부의 기초를 수립하고 각지 임시정부와의 통합에 참여하였고, 1920년 박은식(朴殷植)과 사민일보(四民日報)를, 신채호(申采浩)와 천고(天鼓)를 발간하여 독립운동을 선전하였다. 상하이를 떠나 베이징으로 활동지를 옮긴 김창숙은 이회영(李榮)·신채호와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21년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보합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이승만의 위임통치론을 비판하는 성토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25년에는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군 기지 개척 자금을 모금하였고, 이 자금으로 나석주 의거를 주도하였다. 이후 상하이에 머문 김창숙은 1926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전원위원회 위원장과 부의장에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나 김창숙은 1927년 6월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상하이 공동조계 공제병원에서 일제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