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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인들은 나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그런데 유일하게 국외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방송국 관계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송신소에 근무하는 방송 기술자들은 외국의 단파를 수신하여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 성기석, 이이덕 등이 그들이었습니다.그들은 미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하여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드웨이 해전 등에서 일본이 참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같은 방송국의 한국인 아나운서 양제현에게 알렸고, 그는 이것을 국내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방송작가 송남헌을 통해 동아일보 기자 홍익범에게 전달했습니다.독립운동가들과 선을 대고 있던 홍익범은 이 정보를 김병로, 이인, 송진우, 허헌 등에게 전달했습니다.이들 독립운동가들은 국외 정보를 통해 전쟁의 진행경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면서 해방이 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 전략을 수립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일제 경찰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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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경찰은 단파 청취의 진원지가 경성방송국임을 알아냈고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불어 닥쳤습니다.방송국에서 성기석, 양제현을 필두로 1943년 내내 줄줄이 한국인 방송인들이 검거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방송관계자와 국내 독립운동가를 포함하여 350여 명이 검거되었고, 75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그 가운데 6명이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이처럼 대규모 사건이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1942년에서 해방까지는 모든 언론이 폐쇄된 암흑기여서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방송인동우회라는 단체에서 이 사건을 널리 알렸고, 결국 정부에서 독립운동으로 인정하고 관련자를 유공자로 예우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KBS World Ra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