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page

99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0월 31일: 현병구(28, 남)는 무장대와 함께 삐라를 뿌렸다는 이유로 토벌 대에 연행돼 수산봉에서 총살됨 11월 10일: 고태평(모슬포경찰서 주임)의 부인 김정생(25, 여)은 집을 습격 해 남편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무장대에 피살됨. 딸 고순자(3, 여)는 부상을 당함 11월 12일: 김원찬(42, 남, 민보단원)은 밤에 집을 급습한 무장대에 중상을 입음. 양경행(25, 남)은 무장대에 납치돼 원동 부근 노꼬메오름 에서 피살됨 납읍리에서 벌어진 사건은 다른 마을들과는 많이 달랐다. 위의 주요 사건에서 보듯 소개 이전 주민 학살의 대부분은 무장대에 의해 발생했다. 이러한 사실은 경 찰 출신이 많은 납읍리를 무장대가 그만큼 경계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하겠다. 납읍리가 소개되자 주민들 거의 모두는 애월리로 내려갔다. 곽지리로 간 사람 은 소수였다. 1948년 12월 28일, 애월로 소개한 납읍 주민들에게 예기치 못했던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토벌대는 이날 납읍 주민들을 애월지서 앞에 집결시킨 뒤 ‘납읍리 자위대원 명부’라는 문서를 펄럭이며 호명했다. 이때 호명된 사람들은 신엄리의 자운당으로 끌려가 학살됐다. 이날 학살된 희생자는 확인된 것만도 강 두일(24, 남)을 비롯한 15명에 이른다. (신엄리-학살터–자운당-1, 참조) 그러던 1949년 1월 16일, 이번에는 애월로 소개하지 않고 마을 주변 여기저기 를 숨어다니던 주민들이 빌레못굴에서 학살됐다. 현재 확인된 빌레못굴 학살 희 생자는 모두 28명인데, 그중 절반인 진관행(75, 남)을 비롯한 14명이 납읍 주민 들이다. (어음리–은신처·학살터-빌레못굴, 참조) 그 후 납읍 주민들에게 더 이상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직 후 발생한 제주도의 예비검속 사건은 납읍리도 피해가지 못했다. 1950년 8월 20 일, 김덕수(24, 남, 한림국민학교 교사)와 양경희(28, 남)가 토벌대에 연행됐다 대 정읍 상모리의 섯알오름 일본군 탄약고터에서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총살됐 다. (상모리–학살터–섯알오름 탄약고터, 참조) 한편, 주민들이 소개한 후 무장대는 마을을 습격해 학교와 향사, 포제청을 불태 웠다. 그러나 그 후에는 별 피해가 없었다. 지금도 납읍리에는 옛집들이 원형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