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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융기열사는 1941년 8월 13일 경남 산청에서 아버지 강성혁 선생과 어머니 이분임 여사의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산청초.산청중학교를 졸업 하고 1958년 본교 야간학부에 입학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12년간 지속되었던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기 위해 대규모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에 1960년 3월 15일, 민주화의 불씨를 피우듯 마산에서 가장 먼저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이승만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국민적 항쟁이 일어났다.
민주주의를 꿈꾸며 이승만독재정권을 규탄하는 남성동 파출소 앞 시위 대열 속에 당시 3학년 진학을 앞둔 의혈 청춘 강융기도 있었다. 평화적 시위를 이어가던 시위대에게 경찰은 총기까지 사용하며 폭력으로 맞섰다. 그리고 경찰이 쏜 총탄에 복부를 관통당한 채 병원으로 실려 갔다. 꼬박 27일간 마산과 부산의 병원을 오가며 생사를 넘나들던 그는, 주위의 간절한 바램에도 총탄에 의해 희생된 또다른 15명의 열사들처럼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1960년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당시 학우들에 의해 세워져, 60여 년간 묵묵히 교정을 지켜온 옛 추도비는 세월의 무게에 많이 손상되었다. 이에 마산공업고등학교 총동창회 동문들의 마음을 모아 열사의 흉상과 함께 다시 새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우리는 오늘을 통해 대한민국의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민주주의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던 열아름 꽃다운 청춘의 멸망과 헌신을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한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