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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보욱(22, 남)을 끌고가 총살함. 또한 이날 김옥희(27, 여) 일가 족 4명도 자택에서 남편 어디 갔나 추궁하는 경찰과 서청에 학 살됨 12월 17일: 토벌대는 이날 정자나무 앞에 주민들을 집합시키고 강원식(39, 남)을 비롯한 5명을 지목해 외도국민학교로 끌고갔다 학살함 (외도동-학살터-외도지서 서쪽밭, 참조) 주민 학살은 9연대가 2연대로 교체된 1948년 12월 29일 이후에도 이어졌다. 1949년 1월 24일 안덕면 직원들을 태운 트럭이 하가리와 고내리 사이에서 무장 대의 습격을 받자 보복학살이 이어졌던 것이다. 군인들은 사건 후 하가리를 기습 했으나 별 혐의점을 못 찾자 일부 군인들이 상가리에 왔다. 이들은 상가리 주택 몇 채를 불태우고 양계생(59, 남)과 변지규(29, 남)를 마을에서 비교적 외진 곳인 빌렛가름으로 데려가 학살하고 집을 불질렀다. 1949년 봄을 전후한 시기 무장대의 마을 습격은 과거 지목한 집을 습격하던 것 과는 양상을 달리했다. 이때부터는 식량공급을 위한 약탈극으로 변질되면서 맞닥 뜨리는 주민들도 그대로 살해했다. 상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1948년 12월 30일: 강윤길(54, 남)과 변승종(40, 남)이 보초를 서다 무장대에게 살 해당함 12월 31일: 양승찬(34, 남)이 보초 서다 무장대에 피살됨 1949년 1월 3일: 강태인(25, 남)은 무장대의 기습을 알리기 위해 하가리 파견소 로 가던 중 무장대에 붙잡혀 피살됨 1월 31일: 변대규(28, 남)는 보초를 서다 무장대에 피살됨 2월 11일: 강원용(44, 남)은 보초를 서다 무장대가 습격하자 민보단 본부 에 상황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가 무장대에 피살됨 2월 13일: 양경춘(40, 남, 이명 양치후)은 보초서다 기습한 무장대에 피살됨 3월 8일: 강태수(39, 남)는 무장대 토벌전에 참여했다 교전 중 사망함 한편, 상가리는 중산간 마을이면서 소개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