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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현황 육시우영은 하가리민회관(하가리 노인회관)에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80m 떨어진 창고 건물 뒤편으로, 현재 감귤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2) 주둔지 <응원경찰 주둔소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하가로 182 (하가리 1359-2번지) 나. 개요 1948년 11월 13일 육시우영 사건 이후 응원경찰 20여 명이 주둔했다. 경찰이 들어오면서 파견소 주변에는 성을 쌓았고, 경찰 5~6명이 주둔했다. 그러던 1949 년 가을께부터는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 1개 소대 20여 명이 주둔하기도 했다. 소 대장은 무척 악독했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동네 사람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명분으로 정신훈련을 시키겠다며 연화못에 들어가게 했다. 민보단은 17세 이상 35세 이하의 남녀가 각각 1개 소대씩 편성돼 매일 훈련을 받고, 파견소와 동네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섰다. 주민들은 경찰이 먹고 쓸 식량 이나 장작을 조달해야 했고, 고된 노동 속에 간혹 보초를 서다 잠을 자거나 하는 경우에는 혹독한 매질이 뒤따랐다. 1949년 3월 23일 파견소에서 송두진(38, 남)이 구타당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나자 경찰은 마치 피해자가 도망가다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 해 시신을 주둔소 성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 일로 담당 경찰을 파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으나 한림으로 전출 보내고 사건은 종결됐다. 당시 송두진은 아들이 없어지자 아들 어디 갔느냐고 취조 당하는 과정에서 변을 당한 것이었다. 이때 송 씨의 아들은 경찰이 무서워서 자기 집 마루 밑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육시우영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해병 3기생인 오창기(사망)는 휴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