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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징역 선고를 받고 타지방 형무소로 보내져 대부분 행방불명됨1 11월 6일: 문성희(26, 남, 단국중 영어교사)는 토벌대에 끌려간 뒤 총살 됨. 이날, 양석봉(28, 남) 일가 5명도 무장대로 몰려 토벌대에 학살되고 집은 전소됨 11월 11일: 강군선(19, 남)을 비롯한 21명이 유수암리 절모를굴에 피신했 다 신엄지서로 끌려가 학살됨 (신엄리–학살터–방두리왓, 참조) 11월 13일: 강순생(22, 여)과 김승규(27, 남), 문순범(21, 남) 3명은 토벌대 의 원동주민 학살 당시 원동 주막번데기에서 학살됨 11월 13일: 여자한청 대원이었던 강조순(17, 여)이 하귀지서에서 학살됨 토벌대는 1948년 11월 16일, 약 19호의 주민이 살았던 동카름 마을을 모두 불 태웠다. 그리고 며칠 후인 11월 21일에는 유수암리에 소개령을 내려 주민들이 수 산, 하귀, 신엄 등지로 소개하도록 했다. 소개지에서도 유수암리 주민들의 인명 희생은 이어졌다. 그러나 집단학살사건은 없었고, 1~2명이 학살되는 사건 2 이 1951년까지 이어지며 이 시기 희생자수가 30명을 넘어서고 있다. 한편 유수암리 주민들은 다음해인 1949년 봄, 이웃 마을인 장전리에 함바를 짓 고 장전과 소길 주민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약 10개월간을 머물다 이들은 그해 가을과 겨울에 걸쳐 마을에 돌아가 성을 쌓고 복귀했다. 1) 당시 희생된 18명은 다음과 같다. ▶1948. 12. 5. 군법회의 (행불 1명): 이문팽(31, 남, 이명 이근원) ▶1948. 12. 7. 군법회의 (14명): (행불 11명) → 강위문(27, 남), 강위수(26, 남), 강위춘(23, 남), 강응휴(27, 남), 강희찬(19, 남), 변 기화(25, 남), 이대협(36, 남), 이시춘(22, 남), 이여배(34, 남), 이종시(23), 이홍배(25) (옥사 2명) → 강원식(21, 남), 강우제(18, 남) (후유증 사망 1명) → 강정훈(30) ▶1948. 12. 9. 군법회의 (행불 1명): 강후선(30, 남) ▶1948. 12. 10. 군법회의 (행불 1명): 이시전(33, 남) ▶1949. 6. 28. 군법회의 (사형 1명): 강군화(26, 남, 이명 강재원) 2) 1950년 8월 4일, 강기종(19, 남)과 강명선(43, 남), 고명선(18, 남) 3명이 예비검속으로 농업학교에 수용된 이후 행방불명된 것이 가장 큰 학살사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