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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 애월면 14. 유수암리(금덕리) 유수암리는 애월면 중산간 마을 중에서도 가장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 다. 고려시대 설촌 후 불려왔던 유수암리 이름은 일제강점기 식민정책의 일환으 로 금덕으로 개명된 이후 오랫동안 원래의 이름을 되찾지 못했다. 유수암리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은 1966년이었다. 유수암리는 4·3 시기 1, 2구로 나뉘어 1구 120여 가구, 2구 50여 가구의 주민이 살았다. 마을에서는 4·3 초기부터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인명 희생이 끊이지 않았다. 유수암리는 4·3 초기부터 마을 위치로 하여 무장대와 토벌대 양쪽 모두의 경계 대상이었다. 첫 주민 희생은 당시 금덕리 구장이었던 강계훈(47)이었다. 그는 4 월 12일 마을을 기습한 무장대에 집 밖으로 끌려나간 뒤 학살됐다. 그 후 토벌대 의 만행도 이어졌다. 1948년 4월 20일: 강원교(14, 여)가 토벌대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5월 9일: 대청 애월면 동부지구 부단장이었던 문석주(32, 남)가 무장대 에 끌려가 피살됨. 10월 11일: 토벌대가 마을 주민들을 물거리로 집합시키고 청년들만 끌고 감. 그 후 이문팽(31, 남)을 비롯한 18명은 군법회의에 회부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