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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 됐습니다. 그것은 단지 동광4·3희생자들을 위한 신부님들의 애도나 위무 때 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퍼뜩 제 머리를 스쳐간 역사적 사건들로 하여서입니 다. 조선 말기, 천주교박해가 심해지자 신자들은 관원의 눈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신앙공동체를 이뤄 살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 숨어서 자기들끼리 미사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 졌던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그 광경을 떠올립니다. 큰넓궤에 들어가 2층굴 앞에 서면 4·3과 동광피난민들, 그리고 신부님들과 천주교 박해사건, 동굴미사…. 역 시 4·3유적을 찾는 일은, 4·3희생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4·3유적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새 출발하기 위한 시발점 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4·3유적조사를 처음 시작할 무렵 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안덕면 어느 마을에서였습니다. 마을 조사차 가서 이 얘기 저 얘기하다 얼핏 4·3 얘기를 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때 저와 이야기 를 나누던 분이 갑자기 지서에 신고를 해버려 저는 졸지에 지서에 가서 조사를 받 는 신세가 됐습니다. 뭐, 그 정도 조사야 제가 개인적으로 그 전후 시기 정보기관 에 당했던 고초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때, 별 탈 없이 신분을 밝히고 지서를 나왔지만 당시의 기억은 4·3유적을 조사하는 내내 제 머릿속에 남아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하곤 했습니다. 2018~2019년의 4·3유적 전수조사사업은 조사기간이 2년으로 길었지만 그 만 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제주도 전역의 모든 마을을 조사해야 했고, 지난 1차 조 사에서 들렀던 마을 중에도 조사내용이 미약했거나, 추가로 조사해야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모두 조사·연구팀을 압박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2019년은 4·3연구소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제주4·3연구소 30 년사』를 준비하는데 조사팀 중에는 그쪽 원고도 집중적으로 담당할 수밖에 없는 연구원이 있어 일이 가중됐습니다. 이 모두 창립 이래 지난 30년간 민간연구소로 운영돼온 4·3연구소의 장점이면서 한계이겠지요. 94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