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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두 번째는 학교 앞밭에서 두 사람을 공개 총살한 사건이다. 1949년 2월께, 군 인들은 토벌 중에 잡아 온 남녀 두 사람을 서호국민학교에서 취조했다. 그 후 두 마을 주민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두 사람을 학교 앞밭으로 끌고가 주민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했다. 이날 학교에 나오라고 해서 갔던 호근리 허찬부가 당시 광기의 학살 현장을 목격 했다. “군인들이 산에 가서 폭도를 잡아왔어요. 산폭도. 여자 하나, 남자 하나, 둘을 잡아왔 는데 다 나오라! 해서 마을 사람 모두에게 보여주었어요. 그 사람들을 학교 앞밭에 끌 고와서 총살했어요. 총살하기 전에는 창으로 찌르라고 했어요. 우리에게 잘 보라는 것 이지요. 잘못하면 이렇게 죽인다고…. 여자도 남자도 옷을 다 벗겼어요. 여자는 옷 벗겨 놓고… 칼로 무를 깎아놓고… 옷 벗겨서 찔러 놓고… 발로 탁 밟아버렸죠. 그때 군인이 김중위라고, 또 한소위라고 있었어요. 한소위가 명령을 했어요. 그때 대나무로 만든 창… 죽창. 죽창에 쇠 꽂은 철창도 있었어요. ‘철창 있는 사람만 나오라’고 했어요. 죽창 가진 사람은 필요 없다. 이제 철창 가진 사람만 모아가지고, ‘왓샤! 하면 죽여라.’ 안 죽 이면 자기가 죽는 거라 할 수 없이 다 찔렀죠.” 서호국민학교 옛터. 학교 건물은 사리지고 그 자리에 서호교회가 들어섰다. 사진 왼쪽 나무숲에는 4·3성으로 착각할 수 있는 석조 울타리가 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