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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그 후 원동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어린이들은 곽지리를 비롯한 애월면의 여 러 해안마을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등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1990년 9월 22 일부터 이틀 간 유족들은 옛 원동 마을터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해 무혼굿을 했다. 이때 유족들은 유인물을 통해 위령제를 지내는 이유를 설명하고, 몇 년 전 확인한 조상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법정투쟁을 벌일 것을 공표했다. “무자년 음력 10월 13일 군인들에게 희생당하고 어린아이들 몇 명만 겨우 목숨을 부 지하여 해변가나 고아원으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순식간에 부모를 비명에 보낸 아이들 은 냉대와 굶주림 속에서 모진 목숨을 부지하며 원통함과 그리운 마음을 가슴속에 꼭꼭 묻고 이제 어언 40대 중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자나깨나 비명에 가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드리지 못함을 자식된 도리로서 항상 뼈저리게 안타까와 몸부림치다가 지금에야 비로소 돌아가신 분들의 영전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저 위령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소송은 유족들이 자신들의 땅을 1960년대 정부가 추진하던 대규모 조림사업을 맡아 하던 사람들이 ‘임야 소유권 이전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빌미로 명의이 전했다며 제기한 것이었다. 유족들은 몇 년 간의 법정투쟁으로 조상들의 터전을 원지 표지석 (왼쪽으로 4·3유적지 원동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