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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중부님이 딱 잡아떼서 활동하던 사람이 몇 있어도 없다고 보호했어. 그래서 희생 된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우리 마을은 산에서 습격 들고 그런 것도 없었고, 경찰이 었던 우리 마을 출신 한 명만 중문에서 희생됐지”라고 증언했다. 신천리의 유일한 희생자 김권석(28, 남)은 당시 중문지서에 근무하던 경찰이었 다. 그는 1948년 11월 6일 무장대의 중문리 습격 당시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 송 중 사망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신천리의 4·3희생자는 1명(남자 1명)이다. 1) 4·3성 - 신천리 4·3성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410, 429, 435번지 일대 나. 개요 신천리는 하천리와 신풍리로 둘러싸인 해안마을이었음에도 주민들이 총동원돼 마을을 둘러 축성했다. 그 후에는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마을 경비를 위해 보 초를 섰다. 당시 국민학교 학생이었던 현용원은, “성담은 우리 신천만 따로 쌓았는디 저기 큰놉이라고 허는 디에 지금 성담이 좀 남아 있어. 바다쪽더레 쭉 허게 있지. 지금 은 밭담으로 쓰고 있주. 우리도 보초서레 다녀났어. 선생님이 오렌 허연. 선생님 숙직헐 때 우리도 같이 강 보초 산 거라. 우리가 제일 높은 학년이었으니까. 그때 는 지금 리사무소 허는 디가 학교라 났어” 하고, 당시를 기억했다. 다. 현황 신천리 해안도로 인근, 신천리 410번지 밭의 동편 밭담으로 90m, 429번지 밭 의 동편 밭담으로 140m 정도 남아 있다. 지금은 밭의 경계석으로 이용되고 있으 나 많이 허물어져 높이는 1~1.5m 정도에 불과하다. 435번지 밭의 동편 경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