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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서귀면 명, 여 3명)이다. 1) 학살터 - 서호국민학교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서호동 나. 개요 서호국민학교는 해방 무렵인 1943년 5월, 6년제로 인가가 되면서 6학급 규모 로 설립됐다. 1946년에는 일본 서호친목회에서 피아노와 확성기를 기증해 제주 도 최초로 피아노를 가진 학교가 되기도 했다. 서호국민학교에서는 두 번의 학살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토벌대가 1948년 11월 6일 서호리와 호근리 주민들을 모아 놓고 호근리 주민 7명을 끌어내 운동 장에서 총살했다. 이때 오달형(38, 남)을 비롯한 김인옥(36, 남), 김두정(33, 남), 김승권(28, 남), 김치겸(28, 남), 김치돈(20, 남), 장필호(21, 남)가 숨졌다. 이날 오 복순은 운동장에 모였다가 눈앞에서 아버지가 희생되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아버지와 같이 학교로 갔어요. 어머니는 어린 남동생(3살) 때 문에 그냥 집에 있었고요. 약 50여 명의 주민이 모였는데 장교인 듯한 사람이 연설을 했어요. 연설이 끝나자 몇몇 군인들이 주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너 나와! 너 나와!’ 하 며, 멱살을 잡고 앞으로 끌어냈습니다. 닥치는 대로 젊은 남자들을 끌어낸 것이지요. 그 중에 아버지도 끼었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돌아가라 했지만 나처럼 가족이 끌려 나간 열댓 명의 주민들은 걱정이 돼 돌아가지 않고 남았어요. 군인들은 우리에게 ‘돌아앉아!’ 하더니 불려나간 사람들을 팡팡 쏘았어요.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난 쓰러진 아버지 위에 엎어져 ‘아이고, 아버지!’ 하며 울부짖었어요. 총을 몇 발이나 맞았 는지 피가 형편없이 흘렀어요. 결국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난 혼자 어쩔 수 없어서 집안 어른들에게 소식을 알리려고 학교 밖으로 나갔지요. 그때 날은 저물었는 데 불타는 집들로 온 천지가 ‘벌겅’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