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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짐만 챙기고 알동네(하동)로 내려갔다. 당시 마을의 주택들은 초토화되지 않아 3 일 후 귀가명령을 받고 돌아왔을 때 주민들은 바로 자기 집에 입주해 살 수 있었 다. 오춘화(1932년생)는, “우선 1차로 하동에 짐을 한차례 실어다 놓고 다시 두 번째 짐을 소 마차에 싣고 수에기못까지 갔는데 되돌아가라고 해서 돌아왔습니 다. 그때 오면서 들으니 성산면장이 경찰에 피난을 못 간다고 주장해 피난을 가지 않아도 된다 했다는 겁니다. ‘주민이 없는 면장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나를 죽이 고 피난 시켜라!’ 주장해 관철 시켰다 합니다”라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면장 관 련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특이하게 성산면 일대에만 마을이 초토화되지 않았던 사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한편 무장대에 의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1948년 12월 25일, 무장대의 기습으 로 경비를 서던 민보단원 4명을 비롯해 집에 있던 부녀자 등 10명이 살해됐다. 특 히 이날 학살은 부녀자나 젖먹이에까지 이루어져 주민들의 큰 공분을 샀다. 그 후 신풍리에는 경찰 충남부대가 잠시 주둔하게 되면서 경찰파견소가 들어섰고, 주민 들은 그 뒷바라지로 적지 않은 고충을 겪기도 했다. 신풍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8일: 김경한(32, 남)과 김중현(20, 남)이 신산지서로 연행된 후 신산 리 해안가에서 총살됨 11월 15일: 오성찬(31, 남)과 오홍빈(17, 남)이 신산지서로 연행된 후 온평 국민학교 부근에서 충남부대에 총살됨 11월 25일: 현갑춘(55, 여)·오근옥(33, 남) 모자가 성산리 터진목에서 서청 에 총살됨 (성산리-학살터-터진목, 참조) 12월 15일: 성읍리 친척집에 머물던 앞의 오근옥의 부인 김화춘(28, 여)과 아들(1, 남)이 성읍지서 경찰에 죽창으로 살해됨 12월 25일: 무장대가 마을을 습격해 강태진(75, 남)과 강만진(67, 남), 고경 송(19, 여)·아들(1) 모자, 오원화(19, 남), 오진풍(74, 남)·김정 녀(39, 여)·오양순(5, 여) 가족, 오흥봉(65, 남), 현원석(16, 남) 등 10명의 주민을 학살함 1949년 2월 1일: 마을 인근 야산에 도피했던 고유인(미상, 여)과 오기석(51,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