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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 성산면 11. 신풍리 천미천은 한라산에서 발원해 성산읍과 표선면의 경계가 되면서 냇끼(川尾村) 세 마을, 신풍과 신천, 하천을 잉태했다. 이 세 마을 중 신풍과 신천은 성산읍, 하천 은 표선면에 해당되는데 사실 신풍리는 성산읍 소재지인 고성리와는 12km 거리 에 있지만 표선과는 5km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신풍주민들은 5일장도 표선 장을 보면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성산이지만 생활권은 표선과 같이 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풍리는 중산간 마을과 해안 마을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삼달 리, 남서쪽으로 하천리, 남쪽으로 신천리에 이어진다. 신풍리는 동동네와 알동네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신풍리에도 4·3 시기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져 20여명의 주민이 희생됐다. 그 시작은 1948년 11 월 8일이었다. 이날 전주절단사건을 빌미로 신산지서 경찰들에게 끌려갔던 김경 한(32, 남)을 비롯한 2명이 신산 해안가에서 학살됐다. 그 후에는 주로 집안에 청 년들이 피신해 있어 도피자 가족으로 낙인 찍힌 주민들이 많이 학살됐다. 1948 년 11월 25일, 오근옥(33, 남)이 모친 현갑춘(55, 여)과 함께 성산포 터진목에서 서청에 학살됐는데 (성산리-학살터-터진목, 참조) 얼마 후 아내와 아들도 성읍리 친척집에 있다 화를 입었다. 1948년 11월 16일, 신풍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동동네 주민들은 간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