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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25, 남), 김천두(23, 남) 3명은 성산포 터진목에서 학살했다. (신산리- 학살터-만 물, 성산리-학살터-터진목, 참조) 무장대가 삼달리를 습격하는 사건도 다시 벌어졌다. 1949년 1월 6일, 무장대 는 삼달리를 기습해 마을 서북쪽 버데기에서 강두성(59, 남)을 비롯해 보초 서던 6명의 주민을 살해했다. (아래 학살터-버데기, 참조) 현재 정부가 인정한 삼달리의 4·3희생자는 15명(남 15명)이다. 1) 4·3성 - 삼달리 상동성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11-1번지 일대 나. 개요 삼달리는 중산간 마을에 해당되는 1리(상동)와 해안마을인 2리(하동)가 별도로 축성하였는데 축성은 1949년 1월 6일 무장대의 습격 후 시작됐다. 상동성은 현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을 둥그렇 게 둘렀다. 삼달리 1168-4번지가 서북 쪽 경계지점이 됐는데 성 밖에 위치하게 된 섯동네의 일부는 성안으로 소개했다. 하동은 마을이 바다쪽으로 돌출된 지형 인데 이곳 바다 방향을 제외하고 서북 방향인 현 일주도로 쪽에만 축성했다. 제주도교육청이 1987년에 발간한 학 구향토지 『삼달국민학교』 편에는 삼달 1리의 4·3성 위치가 오른쪽 그림과 같 이 표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