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page
923 성산면 10. 삼달리 삼달리는 성산읍 소재지인 고성리에서 서쪽으로 9㎞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쪽으로는 대포를 경계로 신풍리, 동쪽으로는 분야포를 경계로 신산리와 접하고 있다. 1946년 8월 도제(道制) 실시에 따라 남제주군 성산면에 편입됐고 1리와 2 리가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달리라는 마을 이름은, ‘첫째, 조정에서는 규 율이 중요하고 둘째, 마을에서는 웃어른을 섬겨야 하며 셋째, 세상에 보은하고 백 성을 위해야 한다’ 하는, 사람이 통달해야 할 덕목 세 가지를 중시해 붙여졌다. 원 래 주민들은 삼달 1리는 내(川)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며 ‘와강이’, 2리는 ‘주어동’ 으로 불렀으나 보통은 중산간 지역의 1리는 상동, 해안마을인 2리는 하동으로 불 렀다. 마을은 1리가 훨씬 더 커 1910년께, 1리는 130여 가호(주민 400여 명), 2 리는 20여 가호(주민 100명) 규모였다. 삼달리는 4·3희생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주민들 모두 고초를 겪기 는 다른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1948년 5월 10일, 마을에서 5·10선거는 별 탈 없 이 치뤄졌다. 그러나 당시 무장대에 이장집이 방화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1948년 11월에 들어서자마자 서청특별중대가 마을에 와 청년들을 신산지서로 연행했다. 그런 후 서청은 취조와 고문 끝에 11월 2일, 강경옥(31, 남)·강경성(26, 남)·강경도(21, 남) 형제 세 명은 신산리 해안가 만물에서, 김달범(21, 남), 김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