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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살해했다. 그 후 군인들은 주민들을 서호국민학교 운동장에 집합시켜 ‘폭도에 가 담하지 말라’고 협박한 다음 돌려보냈다. 주민 현원식(1927 생. 2002년 증언)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이날 사건은 군인들이 서호리를 호근리로 착각하여 일으킨 집단총살사건이다. 군인 들이 저 아래로 올라오는데 호근리와 서호리가 붙어 있어 구별도 잘 하지 않고 로케트 포부터 쏘았다. 성옥이, 봉례, 부달휴 세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김만호 모자가 부상을 당했다. 그 사람들 지금도 살아있는데 실제 혜택도 못 받고 참 억울하다. 토벌대 군인 들은 그런 후 호근리로 넘어갔다.” 1948년 12월부터 서호리와 호근리를 잇는 4·3성 축성이 시작됐다. 이 작업에 는 두 마을 모든 주민이 동원됐다. 성이 완성되어갈 무렵인 1949년 1월 13일, 무 장대의 습격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마을 주민 1명이 무장대에 살해되고 부상자 도 나왔다. 뒤늦게 출동한 군인의 오인사격으로 또 한 사람의 주민이 희생되는 일 도 벌어졌다. 다음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 학살사건이다. 1948년 10월 24일: 김성원(27, 남)은 이날 산간 밭에서 일하다 토벌대에 끌려간 후 조천면 교래리에서 학살됨 10월 미상: 현옥연(26, 여)은 남편 김성원이 교래리에서 희생된 후 도순리 이모 댁에서 지내다 경찰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됨 11월 6일: 김원옥(30, 여)은 이날 밭에서 일하다 토벌대에게 학살됨 1949년 1월 13일: 현원식(21, 남)은 대한애국청년단 소속으로 이날 북문초소에서 근무하다 마을을 습격한 무장대에 부상을 당해 후유장애를 겪 다 2015년 사망함. 또한 이날 김문정(39, 남)과 현경원(37, 남) 2명도 무장대와 교전 중 사망함 1950년 7월 미상일: 현창민(22, 남, 보성국민학교 교사)은 7월 어느 날 경찰에 예비 검속된 뒤 8월 20일 섯알오름 옛 일본군 탄약고터에서 학살됨 현재까지 정부로부터 4·3희생자로 인정받은 서호리 주민은 모두 19명(남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