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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당시22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1년 2월 11일 경남 마산 출생 1979년 2월 철도고 졸업 3월 서울공대 기계설계학과 입학(철도청 장학생) 서울대 가톨릭학생회 활동 1982년 12월 1일 군에 입대 1983년 12월 11일 녹화사업을 받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18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79년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한 후 5월 학내 동아리인 가톨 릭학생회 활동을 시작하여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민주화와 민중운 동을 하게 되었다. ’80년 겨울 YMCA내 근로자분과인‘탄천클럽’을 조직하여 지 역 학생들과 민주주의와 지역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81년 1월 야학인‘샘터교 양교실’의 교사로 노동자들에게 노동법 강의, 법률상담을 하며 노동현장에 중점 을 두고 활동 하였다. ’81년‘성남지역대학생연합회’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 며, 가톨릭 학생회와 고향 성남의 J.O.C와 YMCA의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82년 12월 1일 군에 입대하여 근무하다가 ’83년 10월 14일 정기휴가를 받았다. 휴가 중 당시 외국어대 시위주동자였던 동지를 만났다. 당시 주민등록증 일제 갱 신 시기여서 수배중인 운동권 학생들이 도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도와 주려다 이 사실이 보안사에 발각되어 휴가복귀 후 부대근무 중 ’83년 12월 6일 보안사령부로 연행 이 사건으로 군부대 녹화사업을 받게 되었다. 입대 전 학생시절의 민주화운동과 야학연합회 사건 관련 혐의로 전기고문을 당하면서 5일 동안 취조를 받고난 후 12월 10일에 석방되어 부대에 복귀하였고 그 다음날 인 12월 11일 새벽 4시 30분경 동지는 부대 내 문서 보관창구 앞 보초서는 자리 에서 가슴에 3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보안사의 불법적인 연행, 조사 및 폭행 가혹행위와 죽 음이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하였다. 끝내살리라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