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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나. 개요 쉣동산궤 혹은 쉣동산엉장은 수산천의 쉣동산 동쪽가에 있었던 엉장이다. 주민 들은 이곳을 쉣동산엉장, 혹은 쉣동산궤로 불렀다. 크기는 7~8평 정도로, 한쪽 구 석에는 당시 주민들이 숨은 곳을 가리기 위해 나지막하게 돌담을 쌓기도 했었다. 장전리 일부 주민들은 토벌대가 온다고 하면 이곳으로 피신했다. 경찰과 서청은 1948년 6월 12일(음 5월 6일) 단오절 사건 당시 이 엉장에 숨어 있던 주민 6명을 근처에 있는 고다리물 지경으로 끌고가 총살했다. 이때 희생된 주민은 강영관(18, 남), 강태평(29, 남), 강태협(31, 남), 김정열(21, 여, 강태협의 처), 고남도(21, 남), 박경춘(39, 남)이다. 이 사건을 목격한 고이언(2003년 78세, 남)은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털어 놓았다. “1948년 6월 11일 밤, 나는 동산에 있는 진덕진 할아버지네 집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 지. 밤 11시경일 거야. 경찰이 올라와서 마을을 포위하고 있으니 전부 피난가라는 연락 이 들어왔어. 당시 나는 몸이 좋지 못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냥 보초서고 있 겠다고 하니, 진덕진 할아버지가 빨리 나가라고 거의 내쫓다시피 했지. 나는 어쩔 수 없 이 능선이동산 쪽에 숨어서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새벽 총소 리에 잠이 깼어. 약 30명 가량의 서청단원들이 주민들을 국민학교 위에 있는 공회당으 로 몰아가고 있었어.” 경찰과 서청부대는 주민들을 공회당으로 집결시킨 뒤 말 태우기를 시켰다. 남 자들은 무릎을 꿇게 해서 말이라고 하고, 그 위에 어린이나 여자들을 태워 공회당 공터를 계속 돌게 했다. 그날 무릎이 다 헤어져 고통스러웠던 주민들도 많았다. 이날 부친을 잃은 박운포(2003년 69세, 남)가 증언했다. “우리 부친은 공회당에서 일어나는 꼴을 보니 도망가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도망쳤어. 건나물로 해서 동시굴로 가다보니 쉣동산에 아는 사람이 보여 그곳으로 갔지. 사람 운명이 라곤…. 부친은 장전 사람들이 잡혀서 ‘폭도들이 숨어 있는 데가 어디냐! 대라!’고 토벌대가 닦달하는 곳에 간 거야. 완전히 죽을 장소로 간 거지. 우리 부친은 서청에게 잡혀 공회당으 로 끌려가고 있었어. 33세였어. 5명이 고다리물 뒷밭에서 죽었는데, 부친인 박경춘 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