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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다. 현황 신산포구 동쪽 해안가로 해안도로가 개설돼 당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2) 주둔지 - 신산지서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중앙로 1 (신산리 1037-3번지) 나. 개요 신산지서는 4·3 시기 성산면 남동부의 치안을 관할했다. 신산지서는 1944년 10월, 일제 경찰관주재소가 설치되면서 경찰관서로 이어 진 곳이다. 1949년 1월 성산포경찰서가 발족하자 1957년까지 성산포경찰서 관 할지서로 일했다. 온평리를 비롯해 난산리, 삼달리, 신풍리, 신천리를 관할했고, 타지에서 온 응원경찰이 주둔하기도 했다. 당시 응원대는 지서주임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주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난산리 오하옥(1937년생, 여)의 아버지도 이곳에 끌려가 고문과 취조를 당했으 나 풀려나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오씨는, “전날에 삐라를 나무에 다 붙이고 붉은 깃발을, 하는 노래를 불르면서 삐라를 다 붙이니까 뒷날은 아침 밝자마자 지서에 서 왔어. 집에 있는 분은 다 심어갔지. 그때 우리 아버지도 같이 했다고 해서 끌려 간 거야. 하도 취조를 당하니까, 바른말을 하라면서 취조를 당해노니까 살아오긴 했지만 아무 일도 못하고 자리보전 헨 살단 돌아가셨지” 하며, 아프게 당시를 기 억했다. 신산리 주민 강봉학도, “그때 당시에는 계엄령시대니까 응원대장이 최고지. 지 서장은 죽도 못 썼어”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서경비나 신산리를 두른 축 성경비에도 모든 주민들이 나섰다고 했다. 마을 경비에는 여자들도 참여했다. 신산지서에서는 붙잡아 온 주민들을 고문취조하는 소리가 연일 들렸다 한다. 강 씨는, “뭐, 죽는다 산다… 소리가 굉장했지. 우리는 바깥에서 들어가 보진 못하고. 바깥에서 경비하는데… 참. 다 죽어가는 소리가 나곡…” 하며 당시를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