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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 애월면 장전리 주민들은 소개 다음 해인 1949년 봄, 마을에 성을 쌓고 돌아왔다. 당시 성에는 장전리보다 더 산쪽 마을인 유수암리와 소길리 주민들도 같이 모여 함바 집을 짓고 살았다. 이들은 다음 해 봄에 자신들의 마을을 재건해 복귀했다. 한편, 장전리의 좁은 성 안에 3개 마을 주민들이 모여 살게 되자 위생 상태는 물 론 영양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자연히 마을에는 질병이 생겼고 어린아이들은 홍 역으로 많이 죽었다. 당시 이런 아이들을 묻은 애기 무덤(兒塚)이 마을에 서너 군 데나 생겨났다. 당시 성 안에는 경찰 파견소도 설치됐다. 파견소는 소개 당시 유일하게 불에 타 지 않고 남아 있던 뒷동산의 한 주택을 사용했다. 파견소에는 별도 성을 쌓지는 않았다. 주민들은 자신도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둔 경찰 4명의 온갖 뒷바 라지를 하고, 보초도 서느라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장전리는 규모가 작은 마을임에도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4·3희생자만 108명 (남성 94명, 여성 14명)에 이른다. 1) 잃어버린 마을 ① 자구나미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1213-2번지 일대 나. 개요 자구나미는 당시 8호 정도의 아주 작은 자연마을이었다. 이곳은 주민들이 1948 년 11월 중순께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소개한 후 복구되지 않아 현재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당시 호주로는 강경창 조부, 강태성, 강태진, 양옥, 강용어, 강 봉수, 강항부, 양달행 등이 있었다. 이 마을 출신자 중 희생자는 강용어, 강봉수 등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