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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중가주 한국독립운동 중심지, 다뉴바 91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다뉴바 한인들의 독립선언 경축회 미주에서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이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었 다. 3월 9일 중국에 있던 현순(玄楯)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에게 독립을 선언했다는 전보를 보냈다. 독립선언 소식은 미주 각지의 동포들에게도 전보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뉴바의 한인들도 중앙총 회장 안창호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안창호의 전보를 받은 다뉴바지방회 회장 이범녕은 “우리는 각하의 전보를 받고 지극히 기뻐하였나이다. 우리는 뜨거운 열성으로 오늘 저녁에 독립을 경축코자 하나이다”라 고 전보를 보냈다. 다뉴바의 한인들은 안창호의 전보를 받고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 왔다. 어떤 동포는 취한 듯이 정신을 진정치 못했으며, 어떤 동포는 너무 기뻐서 울기도 했다. 다뉴바지방회에서는 6~7명의 동포들 이 자전거를 타고, 곧바로 각 지역 농장으로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다뉴바에서 미주지역 처음으로 독립선언 경축회를 거행하기로 하였다. 다뉴바지방 회의 독립선언 경축회에는 외국인을 포함하여 250 명이 참여하여, 마치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이 경 축식을 개최하였다. 다뉴바 각지 과실 농장에서 일 을 하던 한인들이 만사를 제처두고 경축회 식장으로 달려갔다. 3·1독립선언 이후 다뉴바지방회에서는 특별회를 개최하여 독립선언의 후속 조치를 하기 위해 이순기 와 김관유를 통신원으로 선출하였다. 이들 통신원들 은 국내외의 3·1운동 소식을 동포들에게 전달하고, 또 다뉴바의 외국인들에게도 우리 민족의 독립선언 을 알리게 하였다. 다뉴바 대한여자애국단의 활동 3·1운동의 소식을 들은 하와이 여성들은 1919년 4월 ‘대한부인구제회’라는 여성단체를 결성하였다. 북미지역에서도 다뉴바의 부인들은 독립선언 소식 을 듣고 3월 25일부터 30일까지 협의하여 ‘신한부인 회’를 조직했다. 신한부인회의 목적은 “아들, 딸 동 포의 자유정신을 고취하여 부모국의 후원을 극력코 저”한다고 했다. 또한 북미지역 새크라멘토의 한인 부인회와 다뉴바의 신한부인회는 5월 18일 북미지 역 부인회를 통합하기 위한 「통고문」을 보냈으며, 8 월 2일 각지의 부인 대표자들이 다뉴바에 모여 발기 대회를 열고 합동을 결의하였다. 이때 참석한 부인 회는 다뉴바의 신한부인회, 로스앤젤레스의 부인친 애회, 새크라멘토의 한인부인회, 샌프란시스코의 한 국부인회, 윌로우스 지방부인회 등의 대표들이 참 석하여 8월 5일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게 되었 다. 북미의 4개 지방 부인단체들이 대한인국민회 중 앙총회에 청원하여 8월 5일 정식으로 ‘대한여자애국 단’이 결성되었다. 대한여자애국단은 총회를 조직하고 총부위원에는 한성신·임원덕·김혜원·강원신·한영숙으로 선정하였 고, 행정임원으로는 단장 김혜원, 서기 한영숙, 회계 강원신, 고문 박선을 선임하였다. 여자애국단 조직 에 참여하였던 다뉴바·새크라멘토·샌프란시스코·로 스앤젤레스·윌로우스 등의 부인회가 소재하였던 지 방에는 곧바로 지부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캘리포니 아주의 한인들이 많이 거류하였던 맥스웰·델라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