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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1948년 11월 이후 초토화시기에는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두 차례에 걸쳐 성산포 터진목에서 주민들이 총살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편 온평국민학교 관사는 경찰파견소로 쓰였는데 당시 경찰이 2명 정도 근무 했고, 한 때 서청 경찰이 배속되기도 했다. 1950년께에는 해안마을이었지만 무장 대가 습격해 먹을 것을 탈취해가는 일도 있었다. 온평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0월말: 서청이 온평리 청년들을 신산지서로 연행해갔는데 11월 1일에 그 중 강팽언(26, 남)을 신산리 만물에서 총살함 11월 2일: 송자은(23, 남)과 송희성(22, 남)이 터진목에서 삼달리(3명)·신 양리(2명) 주민들과 함께 서청에 총살됨 (성산리-학살터-터진 목, 참조) 11월 22일: 서청이 강기복(26, 여)을 비롯한 강기순(29, 남), 강길천(61, 여), 강혁호(49, 남), 송길용(67, 여), 정두영(69, 남), 정무득 (50, 여) 7명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터진목에서 총살함 (성산리 -학살터-터진목, 참조) 1949년 2월 1일: 노계월(29, 여)을 비롯한 정봉구(31세), 현여구(43세) 3명이 터 진목에서 서청에 총살됨. 이날 터진목에서는 46명의 성산주민 들이 학살된 것으로 확인됨 (성산리-학살터-터진목, 참조) 현재 정부에서 인정한 온평리의 4·3희생자는 15명(남 10명, 여 5명)이다. 1) 4·3성 - 온평리 4·3성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포구로 62번길 13 (온평리 1107-6번지) (온평포구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