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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자못 주목되는 바이다.’ 한편 4·3 시기 도민들에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던 서북청년회의 결성도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 1947년 11월 2일, 조일구락부에서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 가 결성되어 위원장에 장동춘(張東春), 부위원장에 박병준(朴炳俊)이 선출됐다. 다. 현황 조일구락부 건물은 그 후 여러 차례의 증개축을 거치며 일반극장(구 제주극장 → 현대극장)으로 이용됐다. 2020년 6월 현재 예전 건물은 모두 헐리고 그 자리 는 공터로 남아 있다. ⑥ 제주지방법원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관덕로 25 (삼도2동 1051-1번지) 일대 나. 개요 일제강점기 제주도의 법원은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으로 존속하다 미군정 실 시와 더불어 1945년 10월 11일 제주지방법원으로 승격됐다. 검사국도 제주지방 법원검사국으로 변경되면서 관덕정 북쪽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다. 1947년 3월 10일 도민총파업 이후 미군정은 제주도의 정치상황을 장악하기 위 해 강성우익 인사들을 도정 책임자로 임명하며 강압적인 통치로 전환했다. 그 결 과 다음해 4·3무장봉기가 발발하기 직전까지 1년 동안 주민 2,500명이 무차별 검거됐다. 자연 유치장은 검속된 사람들로 넘쳐났고, 기소된 피의자들이 증가하 면서 법정도 연이은 공판으로 북새통으로 변했다. 4·3 발발 이후에는 이곳에서 일반재판은 물론 군법회의도 열려 항상 북적였다.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군법회의가 두 차례 열렸다. 이 재판으로 2,530명(1차 871 명, 2차 1,659명)이 1년형부터 사형 판결까지 받았다. 재판 후 피고인들은 각 지 방 형무소로 이송됐다. 당시 군법회의로 사형 언도를 받은 388명 중 249명은 1949년 10월 2일 제주공항 안에서 총살됐고, 나머지 사람들도 수장되거나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