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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25년 4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1910년 1월 5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다뉴바지방은 근일에 노동이 풍족한 고로 각처에 서 동포가 모여드는데, 임성택 씨가 ᄲᅩ시(보스-필자) 로 동포의 생업을 인도하며, 또한 사회에 열심하는 이가 많음으로 장차 국민회 경찰소를 설시(設施)하고 자치제도를 행할터이라더라(『신한민보』 1910년 1 월 5일자, 「노동 호황」). 위의 기사 내용으로 보아, 임성택은 1910년 이전 에 다뉴바에서 노동주선소를 설립하여 동포들에게 노동을 주선하고 있었다. 임성택은 노동주선소의 소 장이지만, 영어로 ‘Boss’를 뜻하는 ‘ᄲᅩ시’ 혹은 ‘ᄲᅩ쓰’ 라고 불렀다. 한인들이 다뉴바로 몰려들면서 한인여 관도 생겼다. 송성옥이 다뉴바에서 여관을 운영했으 나 중도에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 뉴바에는 이미 많은 한인 노동자들이 모여 대한인 국민회 경찰소를 설립하려고 했다. 1911년 7월에는 이석원이 다뉴바 에 한인여관 겸 노동주선소를 차렸 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오충국이 여관 겸 노동주선소를 열었다. 다뉴바지방회의 설립 다뉴바의 한인들 20여 명이 1914년 5월 20일 대한인국민회 다 뉴바지방회 설립을 북미지방총회 에 청원하였다. 북미지방총회장 대 리 이대위는 “다뉴바 한인의 완구 (完具)한 근거지요. 동포수 10여 명이 항상 끊이지 않 는 곳에 지방회가 없는 것을 탄식함이 없지 아니하 더니 이제 이미 성립되었으니 전도의 희망이 없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다. 북미지방총회에서는 6월 7일 다뉴바지방회 설립 인준장을 발행하였다. 다뉴 바지방회에서는 특별회의를 개최하여 회장 장춘경, 부회장 이운옥, 총무 손건, 서기 고병관, 재무 김진 규, 학무원 조원두, 법무원 정국현, 구제원 이치완 등 을 선출하였다. 다뉴바의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동 포들을 위한 활동에 매우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1916년도에는 김성원이 다뉴바지방회 회장으로 선 출되었고, 1917년도에는 한시대가 회장으로 선임되 었다. 다뉴바지방회에서는 자치를 실시할 것을 가결 하고 한인 경찰을 두기로 하였다. 다뉴바에는 포도 와 복숭아 농장이 많기 때문에 포도와 복숭아를 따 는 계절에는 200~300명의 한인들이 몰려들었다. 1917년도에도 다뉴바의 농장에는 250여 명의 한인 다뉴바지방회 설립 신문기사(『신한민보』 1914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