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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가져다 쌓았고, 출입문은 소남동산을 비롯해 사농매동산(송당 가는 길목), 동치 못, 노루못, 진빌레, 탈왓(연이네 올래, 고성 가는 길목) 여섯 군데에 있었다. 그 중 동치못과 탈왓에는 홈을 더 크게 파서 다리를 놓아 다녔고, 밤에는 다리를 치우고 보초를 섰다 한다. 성담의 밑굽은 2.5m정도였고 높이는 3m가 되었다. 성담은 30 년 전에 이미 사라졌다고 주민들은 기억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수산리 4·3희생자는 133명(남자 92명, 여자 41명)이다. 1) 주둔지 - 충남부대 본부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서남로 24-3 (수산리 633-2번지) 나 개요 경찰 충남부대(경위 최융양)는 1949년 초, 47명이 수산리 향사 옆집을 본부로 주둔했다. 대원들은 집집마다 2명씩 분산 배치됐다. 그러다보니 살던 집의 여자 와 인연이 되어 결혼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들은 10개월 정도 주둔했고, 토벌 과정에 성산면 남로당위원장 오관형을 잡아오기도 했다. 『수산리지』(47쪽)는, “충남에서 파견되어 온 경찰 1개 소대(소대장 최융양)는 여느 지원부대와는 달리 부락의 민심을 수습해 가면서 청장년들과 힘을 합하여 토벌작전과 방어작전 등의 많은 공을 세웠다. 이 부대를 기리기 위하여 공덕비를 수산성 서편에 건립했다. 지금은 수산리 입구의 충혼비 옆으로 옮겨져 있다” 하며, 이들 부대에 대해 칭찬 을 아끼지 않고 있다. 주민 오무춘도, “우리 집이 다섯 거리였는데 군인 두 명(충남부대)이 살다가 한 명이 결혼하니까 나머지 한 명도 나갔다. 수산리에 1년 반 3 쯤 살았다. 결혼한 군 3) 오씨의 증언과 달리 다른 자료인 『수산리지』나 여러 증언을 참고할 때 이들 부대는 약 10개월 정도 수산리에 주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