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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 성산면 6. 수산리 수산리는 성산읍의 중산간 마을로 동쪽으로는 고성리와 오조리, 서쪽으로는 성 읍리와 접해있고, 북쪽으로는 시흥리와 구좌면 종달리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정의면 수산리 1, 2구로 조정됐다 1933년에는 정의면이 성산면으로 개 칭되면서 성산면 수산리 1, 2구가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 8월 1일에는 제주 도제(濟州道制)가 시행됨에 따라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 수산1, 2구, 1980년 12 월 1일 읍 승격 이후에는 성산읍 수산1, 2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산리는 원나라가 탐라를 지배하던 1276년께 말을 수산평에 방목하기 시작한 후 취락이 형성되고 연못 같은 축산시설이 들어서며 형성됐던 오래된 마을이다. 수 산리는 고성리에서 산간으로 마을이 펼쳐진다. 수산 1리는 물뫼라 불리며 일주도 로변 고성리와 인접해 있고, 고잡이라 불리는 수산 2구는 1구와 2㎞ 떨어진 산간 에 위치해 있다. 수산 1구는 내팟동네와 송대왓동네, 큰동네, 섯동네로 나뉘어져 약 260가호의 주민들이 살았다. 그러나 고잡은 단일마을로 60가호 정도의 주민이 있었다. 수산리는 토질이 검고 기름져 감자나 고구마, 무, 채소 등이 잘 자란다. 수산리에서는 4·3 초기부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1948년 5월 10일, 무장대가 5·10선거 투표장인 향사를 습격해 보초 서던 주민을 살해하고, 향사를 불태웠다. 이날 주민 3명이 희생됐다. 수산주민 고옥자(1942년생, 여)는, “1948년 5월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