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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공회당(향사)은 군인들이 각 마을에 와서, 이렇게 말하자면 이상합니다만 자기네 위 엄을 보이기 위해서 무조건 청년들을 잡아다 때리는 장소였습니다. 무조건 때려서 ‘공 산주의에 가담한 걸 말하라! 자백하라!’ 했던 거지. 그러면 안 한 것도 고통을 면허기 위 해서 했다고 이렇게 했어요. 무조건 공회당 같은데 집합시켜놓고 때리는 거죠. 서북청 년은, 이거는 뭐 군인도 아닌데 무조건 자기네가 경찰의 비호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오면은 난폭한 행동을 했어.” (김봉익 증언) 다. 현황 구 향사의 예전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 마을 중심이었던 신양리 네거리 동 쪽, 커브 지점에 향사가 위치해 있었다. 일제강점기 부녀자 대상 야학과 집합소로 사용되던 향사는 4·3이 나면서 취조와 고문, 구타 장소로 바뀌었다. ② 신양리 민보단본부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26번길 36-1 (고성리 552-4번지) 나. 개요 당시 신양리 민보단본부는 개인집을 사용했다. 단장은 정남훈이었고, 본부는 집 이 컸던 ‘고성리 552번지’ 주택을 이용했다. 1949년 초, 민보단의 연락병은 매일 성산지서에 가서 리단위 순찰암호를 받아왔다. 그리고는 암호를 그날 보초를 담 당하는 민보단원들에게 전달해 암기하도록 했다. 하루 보초 근무자는 30명 정도 였다. 김동환(1943년생, 남)은, “우리 집이 커서 민보단 본부로 사용했다. 고성리 552 번지. 연락병이 지서에서 그날그날 암호를 받아오면 집에서 각 담당들에게 전달 했다. 민보단 본부하면서 별 피해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다. 현황 지금의 김동환 자택으로 옛터에는 4·3 이후 세 번째 신축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