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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주된 이유는 자종이에는 큰자종이물, 셋자종이물, 말젯자종이물이라 불리는 지하 수가 솟는 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이 세 군데의 샘 중 큰자종이물과 셋 자종이물은 수량은 많이 줄었으나 옛 그대로 보존돼(말젯자종이물은 도로를 확장 하면서 매워져버렸다. 그러나 지금도 도로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어 샘이 있었음 을 말해준다) 당시 논이 있었던 주변 경작지와 더불어 수도가 없던 시절 제주도민 들이 얼마나 물을 소중히 여겼는가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4·3 시기 광령리 주민들은 많은 인적·물적피해를 입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4·3희생자는 173명(남성 144명, 여성 29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① 덴남밧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1073번지 일대 (광령1리) 나. 개요 덴남밧은 광령1구에 속한 마을로 덴남밧물(혹은 덴남밧못) 주변에 형성됐던 마 을이다. 원래 도용남밧, 도용남밧물로 불리던 것이 덴남밧, 덴남밧물이 되었다고 한다. 덴남밧물은 식수로 쓰던 작은 물통과 가축을 먹이던 큰 물통이 나란히 이웃 해 있다. 덴남밧은 1948년 11월 19일께, 광령 마을이 소개할 때 마을이 전소돼 잃어버 린 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은 경관이 수려한 칠성동산과 서낭동산을 배경으로 광 령 최초로 향사가 위치했던 중심마을이었다. 4·3 시기 12가호 60여 명의 주민들 이 산디, 보리, 조 등을 일구며 살았다. 호주는 이순문, 이순진, 이상돈, 이상원, 이 도빈, 이순평, 이평근, 강필백, 이영빈, 이원형 등이다. 광령1구에는 덴남밧 외에도 직영, 배여못, 도고리왓, 무수천 등의 소규모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