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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 애월면 1월 25일: 김영현(23, 남)은 외도지서 경찰과 토벌 나갔다가 외도지서 인 근 밭에서 총살됨 1월 26일: 강남수(30, 남)와 강태준(25, 남), 김태우(22, 남) 3명은 보초를 서고 귀가하던 중 외도지서의 호출을 받고 갔다가 총살됨. 양재 선(26, 남)은 외도지서 땔감 사역에 나오라는 호출 받고 갔다가 총살됨 그 후에도 사건은 그치지 않았다. 1950년에는 주민 5명이 무장대에 납치됐다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해 4월 고사리철이었다. 고정규(21, 여)를 비롯한 여성 5명은 다른 마을 주민들 여러 명과 함께 천아오름 부근에 고사리를 캐러 갔다 무장대에 납치된 뒤 행방불명됐다. 당시 함께 납치됐다 풀려난 한 증언자는, 풀려 나오기 전 무장대가 젊은 여성 6명을 쇠줄로 나무에 매달아 고문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기도 했 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많은 주민들이 예비검속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광령 리 예비검속 희생자는 고치규(26, 남)를 비롯한 11명이다. 광령 주민들은 소개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1949년 봄에 물이 좋고 지리적으로 해 안마을과 가장 가까운 2구의 자종이를 복구했다. 당시 이 자종이 마을에는 광령 2 구 주민은 물론 광령 1구, 고성리, 하귀 1구의 광동 주민들까지 500여 세대의 주민 들이 마을 주변에 성을 쌓고 함바를 지어 생활했다. 자종이에는 하귀파견소도 설치 되어 경찰들이 근무했다. 1년 후 고성리와 광령1구는 복구돼 주민들은 고향으로 돌 아갔다. 그러나 광령2구 주민들은 3년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동안 주민들의 생활은 곤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위생상태도 좋지 않았고, 식량 또한 넉 넉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마마로, 어른들은 영양실조로 죽어갔다. 1951년 광령1리와 2리는 합쳐져 광령리가 되었다가 1956년 1리, 2리, 3리로 분리됐다. 이때 2리는 유신동, 3리는 자종이를 중심으로 나뉘었다. 1949년 자종 이 재건 후 자종이에 임시로 살던 진밧과 하귀1구 광동 사람들은 자종이에 눌러 살게 되었다. 자연 진밧(소개 당시 20여 호)과 광동(소개 당시 37호)은 잃어버린 마을로 변해버렸다. 당시 18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자종이에 사람들이 살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