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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 애월면 9. 금성리 애월면의 서쪽 끝에 위치한 금성리는 약 200여 호 가호의 주민들이 살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일주도로를 중심으로 상·하동으로 나눠졌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가지 자연재해로 호수가 줄어 곽지리에 병합되기도 했으나 1894년 곽지리 에서 분리(分里)되어 금성리(錦城里)로 이름 붙여진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성리는 4·3 시기 특별한 좌·우익 활동가도 없었고, 경찰지서도 없어 다른 마 을에 비해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1948년 5·10선거 때는 선거를 보이콧하기 위 해 주민 거개가 마을을 비워두고 산으로 올라갔다. 한 증언자는 그때 상동에서 약 1㎞ 정도 위쪽에 있는 녹남내창에 올라가 있다가 내려왔다고 했다. 4·3 시기, 금성리에서 발생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19일: 무장대가 선거관리위원 양재길(48, 남, 전 구장)의 집을 습격해 살해함 1950년 8월 20일: 김용해(30, 남)와 이대선(30, 남), 이징호(24, 남) 3명이 애월지 서로 연행됐다 제주경찰서로 이송된 후 행방불명됨. 정뜨르비 행장에서 학살됐거나 제주 앞바다에 수장된 것으로 추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