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2page
87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그러자 김동철은 4월 11일 법정에서, 2월 19일 애월국민학교 회의에 참석하고, 3월 1일 제주북국민학교에 나왔다가 중간에 이탈한 사실은 있으나 나머지 혐의 는 모두 부인했다. 이에 스티븐슨 주심은 ①② 항목은 무죄를, ③ 항목은 일부, ④ 항목은 전부 인정된다며 체형 2개월과 벌금 2,500원 판결을 내렸다. 곽지리 김동 철은 4·3의 시작인 1947년 3월 1일에 발생한 3·1사건에 연루됐다는 명목으로 벌 금형에 처해졌는데, 그 혐의점은 당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예비모임(애월국민 학교 모임)과 북국민학교 3·1절 기념식에 참가한 일이었다. 곽지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인명피해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무장 대의 공격은 많이 받았다. 다음은 곽지리의 주요 사건을 정리한 것이다. 1948년 4월 19일: 박영도(39, 남, 애월면사무소 서기)가 친척 박운봉이 경찰이라 는 이유로 무장대에 끌려가 피살됨 12월 5일: 장순하(26, 남)는 장전국민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 휴직 중 토벌 대에 끌려가 애월리 묵은장터에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학살됨 12월 7일: 좌창림(40, 남)은 도립병원 의사로 근무 중이었음. 그는 이날 군인들에게 연행된 뒤 농업학교 인근에서 학살됨 1949년 1월 18일: 무장대의 습격으로 고성지(70, 남)를 비롯한 주민 5명이 피살 되거나 후유장애자가 됨. 이 날 사건에 대해서는 좌창선의 다이 나마이트 이야기(그가 다이나마이트로 무장대를 물리쳐 더 많 은 인명 희생과 학교 교사의 소실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가 전 해지고 있음 1월 21일: 이화련(38, 남)과 장우석(47, 남)은 보초를 서다 마을을 습격한 무장대에 피살되고, 이일표(52, 여)는 그 이틀 후 사망함 1950년 8월 20일: 한림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김상옥(27, 남)은 이날 학교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동료 교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갔다가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집단학살됨. 현재 만벵듸 공동장지에 안 장돼 있음 (금악리–희생자 집단묘지–만벵듸 공동장지, 참조) 한편 곽지리는 1948년 겨울, 마을을 둘러 성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성질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