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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광주(光州) 침산(砧山) 전투 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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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음력) 6월 21일 일본군은 경복궁을 무단기습으로 점령하였다. 이로부터 일본은 조선의 침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으며 이어 10월 15일 동학농민군의 학살 사령관 일본군 미나미 고시로가 후비보병 19대대 3개 중대를 이끌고 주둔지 용산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동학농민군을 처참히 압살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나주목사 민종렬도 침산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동학 농민군을 모두 압살하도록 수성군을 내보냈다. 이 무렵 손화중 장군과 오권선 최경선 등이 이끈 동학농민군 10,000여명이 나주를 공격하기 위해 광주 침산 봉우리에 깃발을 세우고 드높은 함성과 함께 나팔을 불어대며 진(陣)을 치고 있었고 그 뒤에도 무수히 많은 동학농민군들이 황룡강 넓은 들판과 선암에 포진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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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수성군의 도통장 정석진이 포군(砲軍) 600여 명을 거느리고 침산 전방에 도달하여 과녁 하나정도 되는 거리에서 아침(8시경) 먼저 돌격하게 하였다. 대완포(大椀砲)를 쏘며 연이어 천보 조총을 쏘았다. 이에 맞서 동학농민군도 대포와 화승총을 쏘며 창을 잡고 거세게 항거하였다. 그러나 나주 수성군의 우세한 화력때문에 동학농민군은 많은 희생을 당하며 후퇴하였다. 이로써 동학농민 나주 5대 전투 중 광주 침산의 크고 작은 모든 전투는 종료되었다. 참고로 침산은 당시 나주목이 관할한 땅이었다. 현재 침산 주소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산동 446-2번지이다. 2025년 10월 20일 동학농민혁명 항일의사 광주유족회 동학농민혁명 광주기념사업회 광주광역시 광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