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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⑯ 87 하던 마음과 번거롭던 생각이 어느새 시원하게 밝아 졌다. 이에 그 문집 중에서 선생이 일찍이 약봉선조 께 가르침을 구하면서 읊어 올렸던 시에 차운(次韻) 하였다. 23일 손녀를 데리고 조만기의 집으로 돌아왔 다. 밖에서 종손녀의 병세를 두루 물어보니, 병세가 훨씬 덜하나 가끔 헛말을 하는 증세가 있어, 그 시아 버지 계동이 또 약을 지어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이 는 병 뒤의 흔한 증세이므로 비록 깊이 염려할 것은 아니지만, 객지에서 지내는 형편이 너무나 애틋하고 가련하다. 이튿날 마땅히 돌아와야 했지만, 날씨 형편에 얽 매이기도 하도 아이들에게 붙들리기도 하여 사흘을 머물고야 비로소 출발하니 바로 이달의 26일이다. 오전에 비가 저지레를 부리므로 점심 짓기를 재촉하 여 기어이 길을 나섰다. 조카 홍식이 작은 짐을 지고 앞서고, 돌이(사가의 종)가 아이를 엎고 뒤를 따랐다. 녹동의 상주(喪主) 이종교(지금 청구에 우거함)가 이 길에 함께 갔다. 저 물어서 청구의 이씨 벗 집에 이르렀다. 그 종숙부 교 창은 바로 근래에 작고한 교봉의 종형이다. 오랫동 안 조문을 벼르던 끝인데다가, 종교의 자진하여 안 내하려는 뜻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지라 저문 뒤의 방문을 꺼리지 않고 멋대로 이끌고 투숙하였다. 이튿날은 만류로 인하여 조금 지체하다가 오후에 출발하여 돌아왔다. 바로 27일이다. 도중에 이병일 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 사람 또한 고향 이웃 사람이 라 알과(戞過=스치고 지나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잠시 점심을 먹었는데, 정답게 대접하는 것 을 대강이라도 받아들이려는 뜻에서였다. 이날 저녁 에 집에 도착하였다. 28일 맑음. 길에 시달린 나머지 피로가 아주 심하여 저녁 내 내 끙끙 앓으며 바닥에 누워 자리보전을 했다. 스스 로 기력을 겪어보건대 저승에서 부를 날이 머지않으 리라. 가엽고 한탄스럽다. 청구의 이실(李室)이 영춘 으로 돌아갔다. 29일 손자 창로가 이종호, 이정모와 함께 추 가가로 갔다. 이는 학교의 총회가 내일 있어서이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