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5page

867 성산면 ② 동남국민학교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오조로 55 (고성리 1128-1번지) 나. 개요 동남국민학교(설립 당시, 성산공립보통학교)는 1923년 4년제로 고성리 1128 번지에 처음 설립됐다. 그러던 1940년 4월 1일 성산포서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됐고, 1951년 4월 1일에는 성산서국민학교, 1957년 4월 1일에는 동남국민 학교(11학급 인가)로 개칭됐다. 1996년 3월 1일에는 전국적으로 일제시대의 명 칭인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정되면서 동남초등학교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방과 함께 12대 교장으로는 당시 동남교 교사였던 김보연이 취임했다. 4·3 시기 동남국민학교는 방위군 훈련장소로 활용되면서 여성들도 많이 훈련 에 참가했다.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는 동남국민학교 교실은 징병검사장으로 바뀌었고, 운동장은 징집군의 훈련장으로 이용됐다. 1949년 1월 9일, 동남국민학교(교장 김영택) 등사판 분실사건으로 교사들이 학 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학교에는 직원이 10여 명 있었는데 오달송 선생 숙직 때 교무실에 있던 등사판을 분실했다. 강인옥(1928년생, 남, 시흥리)은, “이 사건으로 동남국민학교 선생들이 죽었어요. 그때는 동남국민학교만 관계가 됐어. 사람들을 잡아다가 취조 과정에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고. 그 파견대에서 서북 청년 얘기는 ‘등사판으로 등사를 해줬다는 거’라. 그래서 그것이 죄라는 거지, 내 가 두 명은 기억이 나”라고 증언했다. 『성산읍 역사문화지』(643쪽)도 이 등사판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성산동국민학 교(현 성산초등학교)에는 2연대 특별중대가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돼 주둔하고 있 었다. 근처 공장창고를 사건 혐의자들을 수감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1948년 11월 말경 동남교 등사판이 없어지자 동남교 교사들이 대거 창고로 끌려가 무장대 삐 라 제작을 위해 빼돌렸다는 혐의로 고문을 당하거나 총살되었다. 동남교 교직원 4명과 함께 성산교 교사 정양심, 김두옥이 총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