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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0월 29일: 외도리에 주둔하던 9연대 군인들이 트럭으로 이동하다 무장대 가 고내리 애기벤돌 지경에서 도로를 차단한 것을 발견함. 마침 그때 부근 조팟에서 일하던 주원종(20, 남)과 홍희룡(30, 남)이 달아나자 붙잡아 외도로 끌고간 뒤 외도 남쪽 냇가 소나무밭에 서 총살함 11월 13일: 무장대가 고내리를 습격하여 김봉원(24, 남, 애월중학교 교사) 과 부인 오창순(23, 여), 그리고 양창하(56, 여, 고희봉의 처)와 아들 고시춘(20, 남, 애월중학교 학생)을 학살함. 김봉원의 딸 김정아(3, 여)와 고희봉(66, 남)은 부상을 입었으나 살아남. 무 장대는 김봉원과 고시춘이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 유로 사건을 일으킴 고내리에서 가장 큰 사건은 1948년 12월 14일에 일어났다. 이날, 토벌대는 고 내리를 급습하여 마을주민 300여 명을 다릿목밧에 집합시켰다. 토벌대는 곧 명 단을 보며 40여 명을 호명하고 트럭에 태워 외도국민학교로 연행했다. 당시 토벌 대가 가지고 있던 명단은 고내리에서 하가리로 이주한 고○○가 작성한 것이었다 고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연행된 마을 청년들은 두 차례에 걸쳐 학살됐 다. 먼저 1948년 12월 17일, 외도지서 서쪽밭에서 강성환(31, 남)을 비롯한 18 명이 학살됐다. (외도동–학살터–외도지서 서쪽밭, 참조) 이때 상가리 주민 6명, 하가리 주민 5명도 함께 학살됐다. 그리고 이틀 후인 12월 19일, 또 한 차례 학살극이 벌어졌다. 토벌대는 구엄리 로 출동하던 트럭이 전복되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그 화풀 이로 붙잡혀 있던 주민들을 외도지서 서쪽밭으로 끌고가 학살했다. 이날 박문택 (18, 남)을 비롯한 고내리 주민 7명과 노형리 주민 2명이 학살됐다. (외도동–학살 터–외도지서 서쪽밭, 참조) 당시, 홍화룡은 12월 17일 학살현장에서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붙잡혀 12월 19일 다시 학 살터로 끌려갔다. 그는 이때에도 가벼운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고, 현장에 있던 군 인이 풀어줬다. 그 후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입대했다. 현재, 1948년 12월 14일 외도국민학교로 연행됐던 40여 명의 고내리 주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