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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에게 밉보이면 목숨이 위태롭던 시절이었다. 그때 김기삼이란 청년이 서청의 수 색을 피해 달아나다 붙잡혔다. 그러자 모든 청년들을 공회당에 모이라고 한 서청 은 그를 고문하다 총격을 가했다. 홍씨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그를 신양리에 있 는 정의원에 후송하고 와보니 많은 청년들이 성산포 감태공장 창고로 끌려간 후 였다고 했다. 홍씨는 이렇게 끌려간 청년들 중 홍성두, 홍양순, 정성오를 비롯한 27명이 4~5일 후인 1월 13일 성산리 터진목에서 참혹하게 학살됐다고 아프게 증언했다. (성산리-학살터-터진목, 참조) 다. 현황 당시 향사가 있던 자리에는 단층건물이 들어서 고성리 경로당으로 쓰이다가 최 근 2층 건물로 리모델링됐다. 기존 조사 때는 토벌기념으로 경찰 충남부대가 식 수했다는 향나무를 확인했었으나 이번 조사에는 보이지 않았다. 향사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