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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 애월면 7. 고내리 애월면 고내리는 4·3 시기 200호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취락구조는 일주도로 아래쪽에만 형성돼 있었고, 고내리, 서상동, 동동(동골), 서하동의 4개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마을이 더 커지면서 성실동과 해안도로변 남갈동이 추가 돼 6개 마을이 됐다. 고내리 출신자들은 일본 도쿄에 많이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많은 주민 이주와 4·3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고내리의 디아스포라 적 일본 이주와 도쿄에서의 마을공동체 모임은 문화인류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어 지금도 국내외 연구자들이 고내리를 자주 방문한다. 고내리는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제주도의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이다. 고내 마 을에 있으면 고내봉에 막혀 한라산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한적한 해안마을이어 서 그런지 고내리는 4·3 기간 무장대나 군경토벌대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아 이웃 마을인 하귀리나 구엄리·신엄리에 비해 비교적 피해가 적은 편이다. 고내리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8년 6월: 최명선(21, 남)이 산으로 피한 친척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다 토벌대에 연행돼 행방불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