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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 성산면 담으로 활용되던 성담이 길이 약 20m, 높이 4m, 폭 1~2m정도 확인됐었으나 2019년에는 주변이 잡초가 우거지고 접근도 어려워 이마저 찾을 수 없었다. 주 민들은 고성리 2133번지(정경수 댁 울타리)와 고성리 2117번지(홍원표 댁)에도 성담이 조금 남아 있었으나 얼마 전 모두 소실됐다고 했다. 현재 고성리 1344-1번지 북쪽과 고성리 1355번지에도 성담이 있는데 이곳은 4·3성이 아니라 전통시대의 고성(古城)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3) 역사현장 ① 향사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산성효자로 64 (고성리 1550번지) 나. 개요 1949년 1월 13일 터진목에서 학살된 고성리 청년들을 집결시키고 주민들을 고 문했던 곳이다. 전에는 경찰응원대인 충남부대의 활약을 기리며 기념식수한 편백 나무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949년 1월 9일께, 성산포 주둔 서청특별중대원들이 고성리를 덮쳤다. 고성리 주민 홍성기(2003년 76세, 남)가 당시를 기억했다. “9일께 서청들이 모든 리민들 을 리사무소에 집결시켰어. 한 7, 80명이 리사무소에 왔지. 서북청년들이 이제 김 기삼이란 사람을 눅져가지고 취조를 허는디 폴 양쪽을 눌르고 발 눌르고, 바른 말 을 허라고 허면서 막 취조를 허는 거라. 딱 한 번 보니까 다시 볼 생각도 없고 바 래볼 수도 없어. 큰 주전자에 물을 질어가지고 그것을 코더레 담는단 말이여. 코 더래 담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팔허고 발 눌러부난. 바른 말 헐 것은,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것뿐이거든. 그러고 좀 있으니 팡! 허는 소리가 나. ‘이 새끼 바른 말 안 허민 쏘아 죽인다!’ 허는 소리가 나는 차에 팡허는 소리가 났어.” 그날 서청은 고성리를 포위해 수색했다. 당시 젊은 청년들은 죄가 없어도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