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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그 요구를 거부했다. 3월 10일부터는 이에 항의해 제주도 청을 시작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사상 초유의 민관총파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미 군정은 도민들의 요구를 수렴해 소통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1947년 내내 도민 탄압만을 지속해 결국 다음해 4·3이 발발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 다. 이런 이유로 2000년 1월 공포된 4·3특별법은 이 ‘3·1발포사건’을 4·3의 시작 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관덕정 광장의 제주경찰서 정문 앞에서는 1949년 6월 7일 사망한 무장 대 사령관 이덕구의 시신이 나무십자가에 묶여 전시됐다가 화장되기도 했다. 다. 현황 현재 관덕정 주변의 4·3 시기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제주경찰서는 제주목 관아지 복원으로 사라졌고, 주변의 법원 등 관공서 건물들도 흔적이 없다. 관덕정 건물은 그 후 수차례에 걸쳐 개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려 제주경찰서 정문 앞에 전시된 이덕구 시신(194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