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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025년 4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15일 맑음. 사형(査兄) 황호가 와서 잤다. 16일 사형과 함께 지팡이를 나란히 하고 통화 현 길을 나섰다. 몽손도 보고, 또 소창(消暢=심심하 거나 갑갑한 마음을 풀어 후련하게 함)하고 싶었던 원을 이루려 해서였다. 합밀하를 건너 이회영의 집 을 방문하였다. 굴라령의 문을 연 가게에서 점심을 먹는데, 사먹 는 음식이 모두 먹을 수가 없다. 부득이 달걀 여섯 개 를 삶아 먹었는데 통화현에 이르지 못하여 배고픈 증세가 나타났다. 배고프고 피곤함이 함께 몰려 와 열 걸음에 한 번 쉬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 저물 어서 조만기의 집에 이르렀다. 이는 이계동의 집 종손녀가 천행(天行)의 경계를 범하여[홍진을 앓는다 하여] 아는 사람을 피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들으니 대세는 차츰 덜해 간다고 하나 억지로 범할 것은 없어서 그냥 조만기 의 집에서 잤다. 조만기 역시 병에 걸린 사람이어서 매우 미안하였 으나, 쌀밥과 향기로운 채소로 힘껏 정성으로 대접 하였다. 또 방 하나를 비워 침구와 자리를 마련해 주 는 것이 자제가 부형에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법도 있는 집안에서 부모 장자에게 효제(孝悌)하던 나머지임을 알겠다. 고맙고 고맙다. 형식과 성로, 형 팔 두 족종손이 듣고서 와 뵈었다. 이튿날, 이어서 사형의 우거인 소묘동으로 갔다. 비록 중국 사람의 좁은 방이나, 내가 전에 살던 이구 의 집에 비하면 가히 대가집 거처라 할 만하다. 또 몽 손(증손자 기몽)을 보니 겉모습이 점점 충실해지고 말소리가 낭랑하다. 장차 장래를 걸 만한 큰 그릇이 될 듯하여, 두 손으로 끌어안다 보니, 내외의 이목을 분별할 겨를도 없다. 참으로 기특하고 소중하다. 다만 땅이 궁벽하고 사람이 드물어 시간을 보낼 길이 없으므로 『해월문집』 7책 14권을 읽었다. 참으 로 문장의 으뜸이요, 도학의 문로(門路)인지라, 울적 경학사 등 서간도 지역 이주민 관련 단체가 조직된 유하현(柳河 縣) 추가가(鄒家街) 대고산 일대의 골목길. 뒤로 대고산이 보인다. 1911년 대고산에서 300명이 모여 경학사 설립을 결의했다. 김대락 일가가 이주한 남만주 통화현 합니하의 신흥무관학교 터( 추 정)는 현재 농장으로 바뀌어 있다(이상 『월드코리안』 이종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