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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수 (당시20세) 실 종 1962년 3월 28일 출생 1978년 3월 대구 오성고등학교에 입학 1979년 대학진학을 위해 2학년 1학기에 자퇴한 후 대구 대영학원에서 공부 1981년 3월 서울대 법학과 입학 1981년 4월 법대 학생회 편집부(서클) ‘피데스’에 가입, 1학년 과대표로 선출되어 독재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활동에 참여 1981년 1학기 휴학 1982년 3월 복학 1982년 4월 17일 행방불명 |17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78년 3월 대구 오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대학진학을 위해 2학년 1 학기에 자퇴한 후 대구 대영학원에서 공부하였다. ’80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법 학과에 지원하였으나 불합격하고, 다음 해인 ’81년 3월 서울대 법학과에 다시 지 원하여 입학하였다. 그러다 ’81년 1학기 휴학을 하고, 같은 해 2학기에 복학하였 다가 다시 휴학하였으며, ’82년 3월 복학하였다. 동지는 ’81년 3월 문무대 병영입소 훈련과정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여 훈 련에 제대로 임하지 아니하였고, 같은 해 4월 법대 학생회 편집부(서클) ‘피데스’ 에 가입하여 사회과학세미나에 2~3회 정도 참여하였으며, 1학년 과대표로 선출 되어 독재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활동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5.18 광주민주화운 동 1주년을 기념하는‘대동제’행사에서 촌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82 년 4월 17일 행방불명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모 방송국으로부터“정보사 소속 설악개 발단(HID) 공작팀원이었던 제보자 박씨가 ’82~3년경 신림동 고시촌 앞에서 정보 사의 지시로 동지를 동료 등과 흉기(특별제작된 방망이)로 살해한 후, 차량을 이 용하여 강원도 고성 소재 도원저수지에 수장시키고 이후 사례비로 1,000만원 정 도를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01년 5월 21일부터 같은 해 11월 30일까지 두 차례 에 걸쳐 도원저수지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시행하였으나 유해를 발견하지 못하였 으며 이후 달리 정보사 소속 설악개발단이 동지를 살해하였다는 증거나 정황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아직도 동지의 행방불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진상규명 불능상태이다. 끝내살리라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