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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 애월면 로 연행됐다 풀려난 적이 있었고, 그 후 그는 일도리 소재 조부의 집에서 생활하 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지금도 행방불명 상태이다. 수산리에서는 예원동만 소개했다. 본동이나 하동, 당동은 소개하면 지리적 여 건 상 구엄리가 위험해질 것으로 토벌대가 판단해 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 국 수산리는 구엄리의 방패막이로 소개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소개되지 않았 기 때문에 다른 마을에 비해 물적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 수산리 주민들은 1949년 1~2월께 마을을 두르는 성을 쌓고 복귀했다. 유일하 게 소개됐던 예원동은 1년이 더 지난 1950년 봄에 복구됐다. (상귀리–4·3성–예 원동성, 참조) 수산리에서 현재까지 4·3희생자로 정부가 인정한 주민은 모두 62명(남성 53 명, 여성 9명)이다. 1) 4·3성 <당동성>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1887, 1893, 1894번지 일대 나. 개요 수산리는 본동과 당동, 예원동(상귀리)에 별도로 마을성을 쌓았다. 당동에는 이미 4·3 이전에 ‘방액(防厄)’ 용으로 쌓았던 ‘액막이성’이 존재했다. 당동성은 1949년 1~2월께 마을을 재건하면서 기존에 있던 성을 활용하여 더 높 게 쌓아졌다. 성을 쌓는 과정에서 할망당 앞의 성이 자꾸 무너져서 제사를 지낸 다음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축성에는 수산으로 소개왔던 유수 암이나 장전 주민 일부가 협력했다. 이들은 재건 후 일정 기간 수산 주민들과 같 이 성에 보초도 서고 하며 머물다 귀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