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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 성산면 그때는 아마 우리 정세가 워낙 좋았고, 어느 정도 치안문제도, 사법기관에서도 정신도 차리게 되고 하니까, 이제 혐의도 사실은 없는 거고. 예비검속이라는 것 이, 혹시나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하는 거니까. 그래서, 사실 검속되어서 고생 만 하다가 나왔죠. 그런데, 그 서장님은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하도리의 김석만(초등학교 교장 역임)도 문형순 서장을 잊지 못한다. 김씨의 가 슴엔 언제부턴가 문형순 서장이 각인돼 있다. “몇 년 전 봉개에 있는 평화기념관 에 갔어요. 그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 내가 이 분 덕에 이렇게 오래 살아졌구 나 하고 말이죠. 평화기념관에 가면 <4·3 의인> 부분이 있잖아요? 몰라구장도 나 오고, 김익렬 연대장도 나오고. 거기 문형순 서장이 나오잖아요? 내가 문서장 이 야기를 읽다가, 그냥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 나도 그때 예비검속뒈연 성산 포경찰서에 갇혀났어요. 그땐 젊을 때난 뭐가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르고, 유치장에 서 그자…. 그런데 얼마 없어 석방해주는 거예요. 그냥 나가라고. 그 후 난 내가 왜 잡혀갔는지, 어떻게 해서 석방됐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살아왔어요. 아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죠. 무조건 당시 일은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죠. 경찰 도 잠깐 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교장으 로 퇴직했어요. 그날, 문형순 서장을 알 게 되면서 지난날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 기가 됐습니다. 문형순 서장은….” 성산리 노인회장 김광원(1940년생, 남)이 덧붙여 얘기했다. “성산지서에 붙 은 건물이 당시 유치장이었는데 그 건물 은 없어졌어요. 4·3 때는 관사도 있고, 유치장도 있어서 경찰서 규모가 꽤 컸죠. 지금은 파출소로 축소됐고, 또 도로가 확 장되면서 길에도 편입돼 당시 모습은 많 이 사라졌어요. 당시 예비검속된 사람들 은 지서유치장에 있었죠. 문형순 서장 있 을 때 221명을 살렸다고 들었어요.” 성산지서 옛터의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