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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역
1919년 봄, 창원읍내와 성남면 일대에 자주독립을 향한 특성이 뜨겁게 울려 퍼졌다.
3월 23일, 창원읍 장날에 5천여 명의 군중이 종이 태극 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행진했다.
일제 헌병대는 마산.진해에서까지 병력을 지원받아 시위를 무력진압하고자 주동자 11명을 체포했으나 민중의 외침을 꺾지 못했다.
4월 2일, 읍 장날에 청년 15명을 시작으로 다시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상인들과 5천여 명 군중까지 동참하자 일제는 급파된 병력으로 엄중 진압하고 주동자 20여 명을 체포했다.
4월 29일, 상남면 사파정에서는 숭광보통학교 학생 34명을 비롯한 40여 명이 만세를 외쳤으나, 곧 해산되어 주동자는 검거되지 않았다.
창원의 독립만세운동은 세대와 신분을 넘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자주독립을 외쳤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 을 남겼다